4부에서 다룬 애덤 스미스(시장의 자기조정)와 마르크스(노동의 몫)의 긴장은, 20세기 들어 케인즈와 하이에크라는 두 경제학자의 논쟁으로 이어졌어요. 무대만 18~19세기에서 20세기로 바뀌었을 뿐,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나설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은 똑같아요.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시장이 스스로 불황에서 빠져나오길 기다리기엔 그 대가(실업·빈곤)가 너무 크다고 봤어요. 그래서 정부가 재정지출(공공사업·복지 등)을 늘려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케인즈는 자본주의를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덕적으로 갱신해야 할 대상"으로 봤고, 이런 시각은 미국의 뉴딜 정책 같은 대규모 정부개입 정책의 이론적 기반이 됐어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정반대 입장이었어요. 그는 정부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경제에 개입하면 결국 인플레이션만 만들어낼 뿐이라고 봤고, 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야말로 부와 풍요의 진짜 원천이라고 주장했어요. 하이에크는 시장 가격이 수많은 사람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발견 과정"이라서, 그 어떤 정부도 이 과정을 대신할 만큼 똑똑할 수 없다고 봤어요.
두 사람의 논쟁은 1930년대 대공황 처방을 놓고 본격적으로 불붙었고, 이후 1966년부터 1984년까지 공개 토론과 저술을 통해 계속됐어요. 흥미로운 건 이 논쟁이 죽은 이론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각국 정부가 대규모로 시장에 개입했던 것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재난지원금을 풀었던 것도, 근본적으로는 "지금은 케인즈식 개입이 필요한 순간인가, 하이에크식 시장 자율에 맡길 순간인가"라는 같은 질문의 반복이에요. 한국에서도 2020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소비 진작 효과가 크다"는 케인즈식 옹호론과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포퓰리즘"이라는 하이에크식 비판론이 동시에 나왔던 게 대표적인 사례예요.
1부(은행이 돈을 만드는 원리)부터 5부(국가의 역할)까지, <자본주의> 시리즈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해요. "이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 정답은 다큐도 내려주지 않아요. 다만 뉴스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말아야 한다"는 논쟁을 볼 때, 이게 수백 년째 이어진 근본적인 질문의 최신판이라는 걸 알면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이 글은 개오팀의 분석 의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에요. (자본주의 EP1~5 시리즈 완결)